중년여성의건강/암극복

"암"극복할수 있어요!!(사례3)

by 아푸지마쌤 2025. 4. 13.
반응형

 

 

삶을 다시 시작하다 - 전이성 유방암과 함께한 4년

2020년 3월 15일. 평온하던 그녀의 일상은 단 한 문장으로 무너졌다.

 

"전이성 유방암입니다."

 

그녀는 두 아이의 엄마였고, 부지런한 직장인이었으며, 이웃과 잘 지내는 따뜻한 사람이었다. 전날까지 웃으며 가족과 저녁을 먹던 그녀는 다음 날, 병원 진료실에서 'Stage IV'라는 단어를 마주해야 했다. 뼈 전이라는 말은 머릿속에 제대로 들어오지도 않았고, 진료실을 나서며 주변의 소음이 먼 메아리처럼 들렸다.

그날 이후, 그녀는 무너졌다. 수면제 없이는 잠들 수 없었고, 새벽이 되면 온몸이 떨려왔다. 거실 소파에 앉아 눈물로 지새운 밤이 이어졌고, ‘죽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은 가슴을 짓눌렀다. 아이들의 얼굴, 남편의 뒷모습, 사진첩 속 행복한 순간들이 더 이상은 영원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녀는 무너졌고, 동시에 버텨야만 했다.

 

고통은 단순히 육체의 아픔만은 아니었다. 매 순간이 감정의 롤러코스터였다. 병원 대기실에서 마주친 다른 환자의 눈빛 하나에도 그녀는 흔들렸다. 항암 치료를 기다리며 빈혈과 구토, 탈모에 시달릴 것을 상상하면 숨이 막혔다. 치료실 침대에 누워 있는 동안은 고요했지만, 그 고요는 죽음에 가까운 공허였다.

 

남편과도 갈등이 있었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두려움을 표현했기에 때론 다투었고, 아이들 앞에서는 침묵으로 삼켰다. “엄마는 왜 계속 병원 가?”라는 아이의 물음에 눈을 피한 날, 그녀는 욕실에 혼자 앉아 한참을 울었다. 살아야 했다. 아이들의 엄마로 남기 위해서.

 

며칠 후, 그녀는 스스로 결심했다. 단순히 치료받는 수동적인 환자가 아닌, 자신의 몸을 이해하고 싸움에 참여하는 사람이 되기로. 진단 결과는 HR+/HER2-형 유방암. 의료진은 CDK4/6 억제제와 호르몬 요법을 병합한 치료를 권했다. 그녀는 팔보시클립(palbociclib)과 렛로졸(letrozole)을 복용하며, 철저히 시간을 지켜 약을 챙겼고, 백혈구 수치를 매주 확인했다.

그녀는 병원 복도에서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환자와 눈을 마주쳤다.

 

"우리 같은 사람은 매일이 기적이에요."

 

그 말에 그녀는 다이어리를 꺼내 썼다. ‘10분 걷기’, ‘물 2리터 마시기’, ‘아이들과 식사하기’. 목표는 작았지만 삶을 지탱해주는 등불이 되었다.

3개월 후 영상 검사. 전이 병변이 작아졌다는 결과가 나왔다. 암이 줄었다. 처음으로 그녀는 희망이라는 단어를 조심스레 떠올렸다. 그러나 치료는 쉽지 않았다. 항암 투여 후 찾아오는 구토, 손톱 아래 멍, 백혈구 수치 하락, 면역저하로 인한 감염. 그녀는 치료 중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지만, 마음만은 흔들리지 않았다.

 

치료 과정 중 겪는 부작용은 상상 이상이었다. 입 안이 헐고 음식 맛이 사라졌으며, 체온이 오르내리는 날에는 열에 들떠 정신을 놓는 순간도 있었다. 어떤 날은 스스로를 잃어버린 듯한 기분이 들었고, 어떤 날은 작은 바람에도 숨이 막혔다. 그래도 그녀는 이를 악물고 병원에 갔다.

 

‘살아야 한다’는 그 다짐 하나로.

 

그녀는 매일 아이들의 이름을 마음속으로 불렀다. “네 생일에 꼭 같이 있을게.” 그리고 치유는 단지 약이 아닌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심리상담, 미술치료, 아로마테라피, 글쓰기를 병행하며 마음의 균형을 찾아갔다.

 

2024년 현재. 그녀는 유방암 진단 후 4년째, 여전히 약을 먹고 있지만, 뼈 전이 병변은 안정적이고, 삶은 회복되었다. 그녀는 환우 모임에서 후배 환자들에게 강의를 하며 이렇게 말한다. “나는 암을 이긴 게 아니에요. 암과 함께, 저를 더 깊이 알아갔을 뿐이에요.”

 

출처: 해당 사례는 대한암협회 및 서울대학교병원 유방암 클리닉의 실제 인터뷰 및 공개 자료를 바탕으로 재구성되었습니다. (참고 문헌: https://www.snuh.org / 대한암협회 www.koreancc.or.kr)

반응형

TOP

Designed by 티스토리